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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교회의 탄생, 배넌 혹은 전광훈 목사에 관하여. 마지막 이야기.
    가톨릭이야기/들어라교회야 2018. 12. 5. 22:37

    트럼프 시대의 개막을 미국 민주주의가 표현한 자신감으로 해석한 이들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여성 혐오, 이슬람교에 대한 경멸, 이민과 난민에 대한 공포, 언론과 대의제에 대한 경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결국은 제도에 순응할 것이라고 믿었다는 뜻입니다. 트럼프의 자질에 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그를 통해 주류 정치인들을 처벌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도 민주주의의 일부임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메릴랜드와 하와이의 법원들이 이슬람 국적자들의 입국을 금지한 행정명령에 제동을 걸었고,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려는 시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메케인 상원 의원의 거부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지도자와 시민운동가들은 불복종 운동을 이끌며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태도를 강력하게 견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정점으로 삼은 세력이 민주주의의 방파제에 점점 더 많은 미세한 구멍을 내는 중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어느 정치 세력도 용납할 수 없었을 극단인 혐오 발언이나 차별의 정당화가 차츰 빈번해 지고, 정치인의 거짓말과 위험한 선동을 용납하는 수위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걱정은 대안 우파라고 불리는 세력의 종교적 기반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발언을 하더라도 맹목적으로 지지해줄 유권자들을 만들어내는 종교 지도자들을 친구로 삼고 있는 한, 극우 정치인들은 점점 더 용감하게 민주주의의 경계선을 침범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우려 때문에 예수회가 발행하는 '라 치빌타 카톨리카'는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참모였던 배넌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그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근본주의 개신교의 종말론적 관점과 이원론을 추종하면서 교회가 용납하지 않는 자세를 취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교인은 자신의 대의 때문에 혹은 세상의 요구나 유혹 때문에 정치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의 아래 자신의 욕망을 감춰 두거나 세상의 요구라는 명분으로 은밀한 지배욕을 미화 한다면 그것은 신앙과 민주주의 모두를 훼손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정치와 종교를 기계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를 인정할 수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낙태를 죄라고 선언한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면서도 서명운동과 같은 방식, 정치적 영향력을 동원하는 형태로 교회의 힘을 과시 하려는 자세는 경계해야 한다고 보는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아무리 합당한 명분이 있더라도 교회가 정치 권력을 이용하려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질주하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는 것과 마찬가지라 내려야 할 때 내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19대 국회에 73명 20대 국회에 77명으로 인구 대비 신자비율의 2배에 달하는 가톨릭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전현직 대통령 3명(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치적 힘을 과시할 자원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에게서 권력을 구하지 말고, 임금에게서 영광의 자리를 찾지 말라'  - 집회서 4장 7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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